조건은 완벽하다.
훌리건들의 준동에 골머리를 썩던 영국은 저명한 사회학자와 심리학자들을 동원해 이너마들을 분석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나온 80년대 연구결과들이 지금도 유용한 자료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대게는 이렇게 요약됩니다. ‘평등을 향한 열망, 상실에 대한 보상심리와 현실간의 충돌’... 축구는 평등이란 이상을 완벽에 가깝게 구현해 보입니다. 계급은 없습니다. 행위에 따라 결과가 결정될 뿐입니다. 이는 사람들의 무시무시한 감정이입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왔을 때 우리는 여전히 계급주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또 현대 축구의 기초를 다지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하층민들은 현재 주류에서 완전히 밀려난 상태로 이는 그들의 유대감을 더욱 공고히 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일단 이걸 우리현실과 대입해보면 연관사항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울산이 소득수준이 가장 높은 도시란 이유로 ‘울산 호랑이’를 싫어하는 사람은 대한민국을 통틀어 한명도 없다고 봅니다. 한국전 이후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들게 평등한 사회를 구현합니다. 자신이 노력만하면 출셋길은 얼마든지 열려있고, 가난한 농부의 아들도 국가 수장에 오를 수 있는 나라! 스포츠를 통해 계급 사회의 불만족을 표출할 이유가 별로 없었고, 이상적 평등을 실현해 보이는 스포츠와 실생활을 완벽하게 분리시킬 판단력을 줬습니다.
그런데 다들 아시다 시피 지금 우리 사회구조가 급격히 변해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화두가 소득불평등, 빈부격차. 부의 세습이 되어버립니다. 자신이 차별받는다고 느끼는 계층 중 일부는 자신들을 인식시키기 위해 집단적 움직임을 보이게 됩니다. 복잡하게 따질 것 없이 훌리건이란 사람이 상류층인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나아가 하류층이라 함이 과거의 극빈층과 달라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고, 응원용품을 구입할 정도의 위치는 충분히 됩니다.
또 유럽의 경우 훌리거니즘과 네오나치즘이 사이좋게 공존한다는 특징을 보입니다. 한겨레고 단군의 자손이라는 우리는 이 부분에서도 자유로운 편이었습니다. 허나 앞으로 가까운 미래에 전개될 상황은 어떤가요?
사회 불만 세력이 모두 축구장(혹은 야구장) 난동꾼이 될 것이라 주장한다면 분명 과대망상입니다. 사실 외국의 난동꾼들 중 축구 훌리건이라 불릴만한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습니다. 그냥 축구를 좋아하고 뭔가 불만이 있던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헌데 이 가공할 집중력을 엉뚱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극소수의 선동꾼들이 문제입니다. 이런 부류는 이미 한국에 존재합니다. 전 세계 그 어느 축구 커뮤니티도 우리처럼 호전적이고 적극적으로 싸우고 있는 곳이 없다고 단언합니다. 그 기세가 오프라인으로 번지기엔 그동안 우리 축구팬들 쪽수가 너무 적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에 훌리건이 존재한다는 말에 반감을 가지실 분들께 훌리건의 정의가 뭔지 묻고 싶습니다. ‘경기장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광적인 축구 관중’? 이 정의는 이제 용도폐기 상태입니다. 이전 글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영국은 훌리건을 ‘무리’와 ‘경기장내’에 한정시키지 않습니다. 이번 벨기에 국회청문회에서 내무부장관은 경기장 안팍에서 상대 비방 욕설을 하는 자, 저속한 걸개를 거는 자 등등 물리적 폭력과 관계없이 모조리 훌리건으로 정의, 벌할 것이라 공포합니다.... 정녕 우리나라엔 이런 사람들이 없죠? 싹을 잘라야 합니다. 나중에 엄청난 사회비용을 지출하는 남미, 유럽꼴이 나지 말란 법 없습니다.
투 비 컨티뉴가 될지 어쩔지 잘 모르겠습니다...
# by | 2009/11/04 17:01 | 잡설 | 트랙백 | 덧글(7)
그리하여 들어온 사람이 네덜란드 사람, 루이스 반 할입니다. 확실한 거 하나는 그보다 화려한 경력을 가진 지도자가 그리 많지 않단 점이겠죠. 강성 맹장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헐랭이 클리시가 망쳐 놓은 바이에른에 이런 유형의 감독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