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황금팀 멤버와 북한

‘서울에서 쓰는 평양 이야기’란 곳이 있습니다. 탈북자 출신 동아일보 기자분의 개인 블로그로 저의 대북관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음은 물론 빼어난 이야기 솜씨에 하루도 빼놓지 않고 들리는 곳이 되었지요. 소속팀(?)에 대한 편견은 버리고 다가서셔도 좋다고 보증합니다.

금상첨화로 이 분이 축구를 좋아하십니다. 요 근래엔 ‘북한축구의 해부’ 란 연재물이 올라왔는데 제가 덥석 물을 만한 소재가 있더군요. 다름 아니라 북한이 미국월드컵을 대비해 불러들인 최초의 외국인 지도자,  '체르너이 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에게 도하의 기적을 선물한 주인공... 이번에 에릭손, 히딩크 하마평이 나오면서 북한 최초의 외국인 감독 운운하던데 사실 이전에 이미 체르너이가 다녀간 적이 있습니다. 다만 공식 직함으로 감독을 주지 않았을 뿐이었죠.

문제의 체르너이 팔 감독... 바로 50년대 헝가리 황금팀 멤버였습니다. 자! 가끔이라도 제 블로그에 들려주신 분이라면 이제 제가 왜 관심을 보이는지 짐작하시겠죠?

사실 일전에 연재한 헝가리 황금팀 이야기 에 체르너이란 이름은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멤버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체르너이가 황금팀 멤버였다는 사실은 헝가리인 99.9%가 모른다고 확신합니다. 나아가 헝가리에서도 좋은 지도자로 인정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말이 바이에른을 우승으로 이끈 명장이지 실제론 U대표팀 이끌다 대우 감독을 지낸 비츠케이 보다 훨 아래로 칩니다.  

황금팀이 1954년 스위스월드컵 결승에서 서독에게 충격의 일패를 당하자 세베시 감독은 서서히 세대교체 준비에 들어갑니다.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수혈되는데 공격형 미드필더 체르너이도 바로 그때 황금팀에 합류하게 됩니다. 헌데 수비진과 달리 5년 전 세베시 감독이 부임하며 데리고 들어온 기존 황금팀의 공격자원들은 이제 겨우 20대 후반으로 절정의 기량에 올라있을 시기였습니다. 푸슈카시 페렌치, 히데그쿠티 난도로, 코치시 샨도르, 치보르 졸탄에 펄로타시 페테르까지... 축구사에 한 획을 그은 선수들 사이에서 체르너이 전 북한 감독의 자리는 없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체르너이는 발이 빠른 편이 아니었습니다. 헝가리 토탈 축구에서 죄악으로 평가받아 마땅한 핸디캡입니다. 하지만 아직 가능성 있는 어린 선수였기에 약체와의 경기에선 가끔 출장의 기회를 잡기도 합니다.

그리고 1년 뒤 문제의 1956년 헝가리 반소혁명이 발발합니다. 헝가리 황금팀을 하루아침에 공중분해시킨 사건이었죠. 체르너이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를 외치며 독일로 망명합니다. 이때부터 인생이 좀 풀리기 시작하죠. 같은 길을 택한 동료들이 선수자격정지를 당하거나 헝가리와의 외교분쟁을 염려한 망명 당사국들의 방해로 백수가 되지만 체르너이 만큼은 바로 칼스루헤와 계약을 맺는데 성공해 당대 최강의 팀 ‘후보’ 출신이라는 프리미엄을 업고 (실력에 비해) 승승장구하다 1966년 나이 34살에 스위스에서 은퇴합니다.

이후 스위스 하부리그부터 차근차근 지도자 수업을 쌓던 체르너이는 1971년 벨기에 로얄 안트베르프 감독으로 영전되지만 성적부진으로 곧 해고됩니다. 허나 그의 우월한 출신성분이 다시 구원의 손길을 내미니, 독일 프랑크푸르트 감독으로 있던 헝가리 황금팀 핵심 멤버 출신 로란트 줄라(연재 2부 짤방, 포도주 병에 그려져 있던 그 사람)가 공석이던 코치 자리에 체르너이를 불러들인 겁니다.

그리고 불과 1년 뒤 주성하 기자님이 언급했던 바이에른의 감독이 됩니다. 이 과정도 되게 이상했습니다... 78년 프랑크푸르트와 바이에른 두 팀이 서로 감독을 바꿉니다.(트레이드는 아니고 어쩌다보니 바꾸는 모양세가 됨) 이때 로란트 프랑트푸르트 감독이 체르너이를 같이 데려가겠다고 우겨 관철시킵니다. 이 사건에는 또 한명의 친숙한 인사가 등장하니, 로란트, 체르너이와 바뀐 바이에른 감독이 바로 한국의 92 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지낸 무급직 한국축구 홍보위원 크라머 선생되시겠습니다.(이 양반 땜에 94년 월드컵 앞둔 독일이 우리한테 졸라 쫄아 있었습니다. 제가 들어도 말도 안 되게 추켜세우더군요.)

원래 임시직으로 기용된 체르너이는 로란트가 곧 샬케로 스타웃 되고, 바이에른 사장님이 정한 후임 감독을 선수들이 싫다고 데모를 일으킨 통에 엉겁결에 감독이 됩니다. 처음엔 성적이 좋았죠. 리그 우승 2회, 컵 우승 1회를 차지합니다.

문제는 이 다음부터였습니다. 이 호성적을 체르너이의 역량으로 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돈질 덕이라 이거죠. 아니나 다를까 갈수록 성적이 떨어졌고, 결국 쪼까나 가는 곳마다 죽을 쑵니다. 특히 포르투갈에선 벤피카를 이끌고 리그 3등을 하기도 합니다. 유럽축구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벤피카로선 얼마나 굴욕의 성적인지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1991년 헤르타 베를린 감독을 마지막으로 은퇴하게 되지요. 주기자님이 헝가리 축구팀 사령관으로 있었다고 하셨는데 황금팀 망명 멤버들은 90년대 초까지 아직 협회의 사면을 받지 못했기에 헝가리 팀은 맡을 수가 없었습니다.

3년간 은퇴연금 타먹던 체르너이를 불러들인 곳이 바로 북한이었습니다. 그의 나이 이미 70세. 여기서 그의 실패사에 정점을 찍습니다. 주기자님의 글을 보면 이후 북한이 아수라장이 된 모양입니다. 그럼 우리한테 부러 져준 건 아닌 모양이네요. 암튼 연전연패의 패장 출신으로 나이까지 감안하면 체르너이에 대해 북한이 뭘 좀 잘못 알았나 봅니다. 허긴 뭐 히딩크도 잘 나갈 때 온 건 아니니...... 이후의 스토리는 주기자님의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Korea is one!

by 바셋 | 2010/02/08 12:53 | 축구 | 트랙백 | 덧글(5)

스포츠와 섹스

존 테리가 결국 주장자리에서 쪼까났습니다. 당연한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그 어떤 조직도 같은 결정을 내렸을 것입니다. (예외: 이탈리아 축구팀)

어제 저녁 한 모임에서 타이거 우즈 이야기가 도마에 올랐습니다. 알코올로 특유의 명석한 판단력을 조금 상실한 저는 존 테리 사건을 가져다 붙이는 무모한 짓을 감행했지요. 예상대로 그 자리에는 존 테리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저에게 주어진 환경에선 이런 일이 다반사이며 제가 인터넷 폐인이 되가는 까닭을 설명해줍니다.) 하지만 골프만 운동인줄 아는 이 어르신들도 곧 제 이야기에 흥미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렇듯 섹스 스캔들은 만인의 관심을 끌기 부족함 없는 소재입니다. 헌데 가만 보니 이 사건에 접근하는 방식이 다들 다릅니다. 나이가 내려갈수록 도덕적 잣대를, 축구팬들의 경우 경기력, 팀웍 등 문제를 들이대더군요. 반면 한 여인에 만족 못하는 존 테리 류의 이야기들을 중년층은 ‘판타지’로 분류 합니다. 젊은이들은 근육을 만들려고 운동하고, 중년들은 다른 이유로 운동을 하지요.

유명한 판타지로... 아직도 한 번에 너덧의 여인과 정렬을 불사른다는 호마리우. 행복하게 해준 여자가 2만이라는 체임벌린, 거시기가 너무 커서 붙들어 매고 경기에 나왔다는 패트릭 뉴잉 이야기 등이 있습니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화제를 조금 바꿔... 운동선수의 금욕이 경기력에 도움이 되는냐는 테마는 스포츠 과학에서 아직도 결론을 못 내리고 맨날 떠들고만 있는 논쟁거리입니다.

제 생각엔 별 연관이 없어 보입니다. 아니라면 크날두의 경우 설명이 안 됩니다. 또 다이빙의 루가니스, 럭비의 개리스 토마스 같은 슈퍼스타들이 동성애자였음을 감안할 때 음양의 조화가 일치해 포텐이 터진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신이 내린 섭리를 거스르는 금욕생활이 무슨 이유로 경기력에 도움이 된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제가 임상실험을  해봐서 아는데...

감독들이 외박을 금하는 이유는 섹스 자체가 아니라 그 섹스를 이루기 위해 소비하는 쓸데없는 에너지 때문으로 봅니다. 본인 입으로 직접 말했듯 호나우딩요가 섹스에 빠져 경기력이 떨어진 게 아닙니다. 잠을 안자니까 떨어진 거지... 뭐든 그냥 적당한 게 좋은 겁니다. 지킬 건 지키고... 성경에도 친구 부인하고는 자지 말라고 쓰여 있잖아... 


by 바셋 | 2010/02/06 13:28 | 축구 | 트랙백 | 덧글(21)

아프리카의 배신

CAN 2010 감상문입니다.

이집트가 3회 연속 우승의 영광을 차지했습니다. 이 나라는 왜 월드컵에 나가지 못할까요?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월드컵 예선 플레이오프에서 한방 먹인 알제리를 이번엔 처참하게 발라놓기까지 합니다. 월드컵과의 개같은 궁합은 딱히 무슨 이유가 있다기보다 그냥 징크스로 봅니다. 대신 월드클래스 스타선수들 없이도 축구는 돌아간다는 증거 하나 만큼은 확실하게 남겨놓습니다. ‘축구는 팀웍’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유럽을 주름잡던 스타들의 플레이는 팀웍을 떠나 실망스러운 점이 많았습니다. 드록바 경우 특히 8강 알제리전 같은 경기에선 출전했다는 자체가 기억나지 않습니다. 에시앙은 반 경기에만 출전했고, 아델바요르는 대회전에 팀과 함께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나마 에투는 봐줄만 했습니다. 두 골이나 넣었죠. 그렇다면 이번 대회의 특징은 무엇이었을까요?

골키퍼가 후지더라, 수비조직력이 개차반이더라, 필요 없는 거친 플레이를 하더라, 답이 없을 땐 무조건 슛이더라, 심판이 구리더라, 카는 부분들은 이번 대회만의 특징이 아닙니다. 언제나 그래왔고 그것 때문에 재미가 반감되지도 않았습니다. 헌데 이번 대회는 확실히 재미가 없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토고 선수단의 컴 백 홈보다 더 깊게 새겨야 할 부분은 바로 이 대회에서 극명하게 나타난 아프리카 축구의 변이입니다. 이노무게 아프리카 축구를 망쳐놓고 있습니다.

이글루스 블로거이자 자신이 아스날 선수인줄 아는 배정훈님으로부터 ‘바펠레’라는 놀림을 들어야 했을 만큼 토너먼트부터 대회는 제 예상과 반대로 진행되기 시작합니다. 기대하라는 나이지리아는 죽을 쑤고, 별거 아니라는 가나는 날아다닙니다. 제 판단의 결정적 실수가 있었습니다. 조별리그부터 복선을 깔고 있던 바로 그 변이를 짚어내지 못한 겁니다.

자! 가나가 힘들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과거 화려했던 미들진이 보이지 않고, 새로운 애들은 좀 모질라 보였기 때문이라고 했죠. 이는 망국의 지름길 선입견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제 아둔함 때문입니다. 아프리카 축구는 다수의 공격 자원을 배치하는 원형을 무조건 유지한다는 선입견 때문에 가나 미들진이 오합지졸로 보입니다. 헌데 가나는 애초에 제 예상대로 움직일 생각도 없던 팀이었습니다.

감독이 세르비아 사람이라 그런지 얘들은 美를 버리고 철저히 이기는 축구를 추구합니다. 8강부터 얄짤없이 원톱 박고 다량의 미들을 펼쳐놓습니다. 미들진들의 수려한 축구가 보이지 않은 건 못해서가 아니라 안 해서 였습니다. 유럽식 축구로 변이를 일으킨 겁니다. 성적은 좋았으니 욕은 심하게 못하겠습니다. 그냥 섭섭합니다.

가나 반대의 예가 바로 나이지리압니다. 얘들은 철저히 아프리카식에 충실했습니다. 기본적으로 433을 유지했고 들쑥날쑥하긴 해도 갈수록 공격수들이 몸이 풀리고 있음을 감지했습니다. 그래서 잘할 꺼라구 했습니다. 근데 웬걸! 점점 못합니다. 그랬습니다. 얘들한텐 신통방통한 플레이메이커가 없었습니다. 이 상태에서 공격수만 잔뜩 늘려놓으니 선진(?) 유럽식 조직축구를 하는 애들한테 발립니다. 나이지리아의 미들진은 수비진보다 한 발 앞에 서있다는 점 외에 그 어떤 차이도 보여주지 못합니다. 공격수들과의 간격이 구만리입니다.

이는 한국에게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닙니다. 바보도 아니고 월드컵 때까지 똑같이 갈 턱이 없습니다. 좋은 공부가 되었겠지요. 수비의 기본을 모르고 8골이나 쳐드신 카메룬을 보며 즐거워했을 일본 축구팬들에게도 똑같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4강에 가려면 제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예언 하나 합시다. 아마 다음 대회부터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은 더 재미없어질 겁니다. 하여간 유럽 놈들은 안 좋은 걸 너무 많이 퍼트리고 다녀 문제입니다.

by 바셋 | 2010/02/04 14:59 | 축구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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