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가을 체코... 슬라비아는 7점차의 격차를 벌리며 지존 스파르타를 따돌리고 선두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막 스무 살을 넘어선 라덱 베이블, 파트릭 베르게르, 파벨 노보트늬, 블라디미르 시미체르... 2년 뒤 전 유럽을 충격과 공포에 몰아넣을 이 젊은이들은 슬라비아에게 47년 만에 우승컵을 안길 꿈에 부풉니다.
그러나 겨울 휴식기를 마치자 저력의 스파르타가 연전연승을 거두며 슬라비아를 압박해 들어옵니다. 4월 운명의 맞대결. 한명이 퇴장 당해 총수비로 맞서는 슬라비아의 벙커를 향해 스파르타 선수들은 불나방처럼 달려듭니다. 이 시즌에만 스파르타는 4명의 감독을 갈아 치웁니다. 사즉필생!
결국 스파르타는 단 한 골로 승부를 갈랐고 기세를 몰아 잔여 아홉 경기 전승을 거둬 체코 왕좌에 오릅니다. 그날의 한골은 시즌을 결판낸 골든골이었다해도 과언이 아닌 가치있는 골이었습니다. 그리고 유로96을 앞둔 대표팀 감독 두샨 우린은 방년 22세인 그 골의 주인공을 주전으로 전격 발탁합니다.
소개가 늦었습니다. “ THE 파벨 네드베드 ”
네드베드와 두산 우린 감독... 체코가 자랑하는 두 전설의 인연은 네드베드가 체코리그에서 빛을 발하기 훨씬 이전부터 시작됩니다.
1972년 독일 국경 인근 공업도시 체프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네드베드는 주중에는 학교에 다니고 주말에 인근 2부리그 클럽 라다 흐베즈다 산하 유소년팀에서 공을 차던 소년이었습니다. 1985년. 젊은 지도자 두샨 우린은 연수차 라다 흐베즈다를 방문했다가 작지만 힘은 좋았던 네드베드를 유심히 관찰하게 됩니다.
여담입니다만 흔한 체코 성씨인 네드베드는 곰이란 뜻입니다.(대웅제약의 그 곰. 슬로바키아에서는 메드베드 헝가리에서는 메드베) 그래서 힘이 좋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암튼 네드베드는 별 탈 없이 차곡차곡 엘리트 코스를 밟아나갑니다. 두어 차례 유소년팀을 옮겼기에 1989년 우린이 정식으로 라다 흐베즈다에 부임했을 때는 다른 곳으로 떠나고 없었습니다. 그러다 1991년 군복무 대치가 가능한 두클라 프라하에 들어가며 네드베드의 성인 캐리어가 시작됩니다.
같은 해 우린 감독은 스파르타 프라하의 지휘봉을 잡습니다. 당시는 스파르타 헤게모니가 깨지고 슬로반 브라티슬라바가 득세할 때였는데 우린이 이를 원상복귀 시킵니다. 그리고는 두클라에 있던 네드베드를 스파르타로 불러들입니다. 스파르타 역시 군복무 대치가 가능한 내무부 산하 클럽이니 네드베드는 타부대로 전출당한 셈입니다. 이 두 클럽은 지하철로 세 정거장 거리 정도 밖에 안 떨어져 있습니다.
체코 최강 클럽에 합류한 네드베드는 당연히 벤치 신세였습니다. 허나 상대적으로 선수층에 얇았던 두클라 시절 풀타임 선발로 한 시즌을 뛰어본 터라 리그에 적응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불러 올린 우린 감독은 이내 대표팀으로 자리를 옮기지만 네드베드는 1년만에 스파르타의 주전자리를 차지합니다.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
다시 1996년으로 돌아옵니다. 대망의 유로96 본선. 첫 경기에서 체코는 독일에게 참패를 당합니다. 절망했습니다. 먹고 대학생이던 저로서는 꽤 큰돈을 모조리 체코의 우승에 걸어 놓았거든요. 결과적으로 제 판단이 심하게 틀린 건 아니지만 당시 체코는 터키 다음으로 높은 배당률을 받던 팀이었습니다. 체코 팀 스스로도 조별경기가 끝나는 시점에 집에 가는 비행기표를 예약해 놓았을 정도로 기대를 안 하고 있었습니다.
조롱거리가 됩니다. 체코 유소년들이 장난이 아니었다는 제 주장은 독일전 한 게임으로 설득력을 완전히 상실합니다. 그래도 희망은 보았습니다. 라치오가 데려가려 했다는 그 놈(그땐 이름도 제대로 몰랐음) 바로 네드베드 만큼은 똥통 속에 진주처럼 빛나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베테랑급 한둘을 보강하고 다음 이탈리아와의 경기를 잡습니다. 네드베드가 선취점을 넣습니다. 젊은 보헤미안들은 갈수록 강해집니다. 그담부터는 가슴 떨려서 못쓰겠습니다.
감동을 주체 못한 저는 그해 여름 스파르타 경기장을 찾아 기차타고 프라하로 떠납니다. (인증샷 없음. 집시가 카메라 훔쳐감)
네드베드의 플레이는 날카롭고 순결하며 겸손합니다. 경기의 흐름에 몸을 실은 체 유유자적 흘러 다니는 깔끔한 운영을 보여줍니다. 당시 경기 해설자가 말합니다. “기계처럼 달리고 대포처럼 쏜다.”
대회가 끝나고 네덜란드의 아인트호벤이 네드베드 영입에 가세하지만 예정대로 라치오가 새 보금자리가 됩니다. 세리아에 적응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습니다. 세련된 경기운영과 현지 친화적 언론플레이로 금세 로마인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었고 곧 전 이탈리아가 천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미드필더라며 호들갑을 떱니다.
이적 이듬해 컵과 슈퍼컵을 차지했고 리그 11골을 득점합니다. 겨울에 부상을 당하며 5개월 아웃 진단을 받는데 한 달도 안 되어 다시 경기장에 나타납니다. 아틀레티코가 거금에 주닝요 파울리스타를 얹어 교환을 제안해오자 라치오의 대답은 “너나 쳐드삼” 이었습니다.
99년 라치오는 리그와 컵위너스컵 모두에서 좋은 성적을 얻고 있었습니다. 전선을 확대하는 것이 무리하다고 판단한 라치오는 밀란과 경쟁하던 리그를 버리고 컵위너스컵에 화력을 집중합니다.
대망의 결승전. 상대는 RCD 마요르카. 1-1 상황에서 상대선수와 충돌로 심각한 복부 통증을 참고 뛰던 보헤미아 용병 네드베드가 결승골을 성공시킵니다. 골 세레머니 중에야 동료들은 이 친구가 더 이상 경기에 뛸 수 없는 심각한 상태임을 알아챕니다. 당시 수상식 사진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네드베드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 정도의 힘도 남아있지 않았으니까요.
이어진 유럽 슈퍼컵에서 맨유를 무찔렀고 2000년 리그와 컵을 모두 차지하는 클럽 역사상 최대의 역사를 만들어냅니다. 잉글랜드에서 현금 인출하는 소리가 이탈리아에까지 들립니다. 맨유는 기존 네드베드의 급여에 3배에 달하는 조건을 제시했다가 너나 쳐 드십니다.
그해 9월부터 대표팀 주장 완장을 하사받습니다. 10월 체코가 유럽연합에 가입하자 이적에 따르는 불리함도 사라집니다. 곰돌이의 몸값은 삼겹살 값 오르듯 뛰어오릅니다.
천년만년 소속팀에 충성을 다할 것 같던 상황은 2001년 라치오의 재무제표가 적자로 돌아서자 바뀌기 시작합니다. 라치오로서는 아직 계약이 3년이나 남은 네드베드를 팔아 클럽을 살려야 했고 네드베드도 상황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유럽의 난다 긴다 하는 클럽들이 다 달라붙습니다. 입찰은 유벤투스의 몫이었지요. 예나 지금이나 저는 네드베드를 위해서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유베는 그해 지단과 인자기를 팔아치웁니다. 그 돈으로 네드베드를 비롯해 부폰, 릴리앙 튀랑를 구입했고 리피 감독이 다시 지휘봉을 잡습니다.
트레제게는 몰라도 델 피에로는 네드베드와 호흡을 맞추기에 너무 멍청합니다. 그렇다고 네드베드가 중앙에서 지단만큼 해줄 가능성도 낮습니다. 리피의 장기판 축구에서 네드베드의 슈팅능력은 별 필요가 없어지고 그렇다면 사이드로의 이동이 불가피해집니다.
예상대로 네드베드는 어딘지 불편해보였습니다. 그의 플레이가 만족 못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라치오나 대표팀에서 보여준 포스는 찾을 수가 없었지요. 플래툰 시스템 속에 갇힌 이승엽의 향기를 뿜습니다. 대표팀에서는 벨기에와의 플레이오프에서 패하며 02월드컵 진출이 좌절되는 실패도 경험합니다.
다행히 특유의 빠른 적응력으로 이어진 시즌부터는 유베의 핵심 전력으로 돌아옵니다. 도무지 실수를 범하는 법이 없는 선수입니다. 기복도 없습니다. 소속팀은 2년 연속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대표팀은 가볍게 유로04 본선행을 이룹니다. 챔스리그 결승에도 오르지만 네드베드는 경고누적으로 나서지 못합니다.
레알 마드리드와의 준결승에서 훌륭한 플레이를 보여주던 네드베드가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엉뚱한 반칙으로 경고를 받습니다. 완벽함의 상징이었던 본인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는지 그대로 잠적해버립니다. 물론 아직 리그 경기가 남아있던 상태였죠.
네드베드에 대한 네가티브한 이미지들 그리고 그의 프랑스 풋볼 황금공 수상에 대한 태클의 근거는 대게 이때 기자들이 날조한 기사들에 근거합니다. 끼가 많고 달변인 그는 기자들을 너무 많이 만납니다. 고급스런 플레이와는 반대로 싼티가 있습니다. 사춘기 시절 우상 김태원을 샴페인에서 다시 만나는 심정만큼이나 안타까운 대목입니다.
어쨌거나 한달여의 시기 부적절한 사춘기를 보낸 네드베드는 다시 클럽으로 복귀해 맹활약하기 시작합니다. 유벤투스와의 계약은 2008년까지 연장됩니다. 이제 네드베드 없는 유베는 상상할 수 없었고 네드베드는 유베에서 영광스런 은퇴를 할 것이라 믿었죠. 그런데 누구도 예상 못한 엄청난 시련이 닥칩니다.
폴리칼치오 파문으로 05, 06년 유베의 스쿠데토가 몰수됩니다. 팀은 강등되었고 튀랑, 비에이라, 칸나바로, 즐라탄까지 모조리 토리노를 떠납니다. 시선은 네드베드에게 집중됩니다.... 남았죠... 체코시절부터 돈보다는 몸에 맞는 클럽을 선호하던 그의 성향이 절정에 오른 순간이었습니다.
2부리거 네드베드는 같은 해 월드컵에서의 참패를 끝으로 대표팀 은퇴를 선언합니다. 일종의 취미생활이랄까요. 사실 그 이전에도 자주 은퇴하긴 합니다. 그때마다 카를 브뤼츠크네르 대표팀 감독은 슈퍼스타에 대해 전방위 외교를 펼칩니다. 대체 이 둘이 정확히 어떤 관계였는지는 더 시간이 지나야 명확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월드컵 한달여 뒤 스파르타 경기장에서 세르비아를 상대로 네드베드의 대표팀 고별 무대가 열립니다. 2년 뒤인 작년 그의 대표팀 복귀가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지만 성사되지는 않지요.
그리고 올시즌을 끝으로 네드베드의 현역 생활은 막을 내립니다. 그는 여전히 위력적입니다. 여전히 팀의 핵심전력이며 얼마전 레체와의 경기에서는 혼자 두 골을 넣습니다. 이러니 클럽 수뇌부에서 그의 은퇴를 연기하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시즌 중반 블로그에 유베 젊은 미드필더들의 성장 속도를 근거로 30라운드 즈음 유베의 리그 선두 탈환과 네드베드의 후보화를 예언한 적이 있습니다. 제 안목은 역시 짧더군요. 선두는커녕 3등으로 밀렸고 네드데드는 여전히 풀타임 선발입니다.
유베 축구의 미학은 예나 지금이나 감독이 누구이건 간에 선수비 후역습에 있습니다. 상대 극한의 공격을 받아주다 그 극한이 틈을 보이는 순간을 파고듭니다. 젊은 선수들은 상대를 극한으로 모는 법을 빠르게 습득했습니다. 하지만 그 틈을 판단하는 능력은 아직 없습니다.... “감히 THE 카렐 네드베드”를 따라올 수가 없습니다.
.
.
한 사람의 장점을 찾는 건 어려워도 흠집을 잡기는 쉽습니다. 한때 네드베드는 거품스타라고 비난한 적이 있었는데 돌이켜 보면 근거가 전혀 없습니다. 15년 가까이 네드베드의 경기를 봐오지만 그의 단점이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네요. 실전에서 네드베드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이제 딱 네 번 남았습니다. 아마 그 안에도 단점 따위는 발견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만한 미드필더는 다시 나타나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듭니다......
# by | 2009/05/10 20:41 | 인물 | 트랙백 | 덧글(24)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그나저나 저도 브뤼크네르 감독과의 관계는 참 추궁해보고 싶다는. 사실 체코에게 황금기를 가져다주긴 했지만 네드베드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대표팀을 망쳤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미운감도 있습니다. 유로 2004를 끝으로 말끔히 결별했어야 했는데 2006 월드컵 복귀와 함께 모든 게 엉켜버렸죠. 정말 2006 예선때만 하더라도 완벽히 리빌딩에 성공했다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죠. 여튼 애정이 많은 네디였습니다. 선수 생활 잘 마무리 해주길.
ps. 여친도 네드베드팬인데 매일 1년만 더 뛰어달라고 노래를 부릅니다. 신혼여행으로 토리노가서 볼꺼라고 허허. 가능할래나 모르겠습니다.
체코 언론을 보면 반대로 네드베드의 애매한 처신이 인디안 감독을 곤란하게 하는 것 아니냐고 봐요. 쌍방과실이 아닌가 싶고.... 툭하면 둘다 언론에다 절친이라고 떠들지만.... 그걸 어케 믿겠어요...
토리노로의 신혼여행 꼭 가능해지길 빕니다.^^
이라는 부분에서 깊은 동감을 T_T
2001년 밀라노에서 로마로 이동하다가 도난당해서 결국 새벽의 볼로냐역에서 다시 밀라노가는 차를 타기 위해 뭣같은 심정으로 있었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T_T
네드베드의 단점이라면 역시...너무 뛴다는 겁니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쳤는데도 경기장에 나가는거요...너무 살신성인하는게 단점이지요 ^^
1998, 2000에 로마의 라치오 포인트를 방문했을 때 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때도 네드베드에 대해선 그냥 이 말밖에 안하더군요 '개 빼놓고 뭘 설명해요...' 라고...영웅 추앙받았죠. 문제는 그놈의 디노 조프 감독이후 사장...-ㅅ-
1998과 2000의 라치오 포인트를 비교하자면 아주 활기가 달랐습니다. 1998은 웬 창고 들어간 느낌이었는데 2000땐 아주 활기차서 거기 주인 아줌마의 안색 자체가 달라져 있더군요...2001년에도 방문하려 했는데 위에 말한 카메라 도난으로 인해 기분 잡쳐서 그냥 파리로 돌아가서 비행기 기다렸었습니다. 2001년에도 방문할걸 그랬나봅니다 ^^
제 도난의 역사도 참 파란만장한데... 야간기차타고 바르샤바 가다가 신발을 도둑맞았는데 승무원이 불쌍해서 쓰레빠 주더라구요. 그때가 4월인데 도착하니 눈이 펑펑.... 잘츠부르그에서는 방갈로에서 자고 일어났더니 가방을 털어 갔더군요... 근데 딴 거 다 놔두고 쓰던 치약을 가져갔어요....;;; 생계형 범죄???
다시 그쪽으로 여행하실 일 있으시면 좋은 사진 많이 부탁드립니다^^
네 ^^ 저도 이제 다닌다면 그걸 기록으로 남기면서 다니고 싶습니다. 가볍게 다니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필름의 무게 등이 이젠 자유로와 졌으니까요...
어떤 면에서 보면 요즘의 여행자들은 정말 많은 축복의 여행자들이 아닌가 싶어요 ^^
정말 여행다니다보면 그놈의 도둑들 땜에 내 눈에 살기 흐르게 만들더군요...-ㅅ-
악당이 되야 여행을 편하게 다닐수 있나 봅니다 흑흑
지금도 저렇게 위대한데 90년대 후반은 정말 어땠을까?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인터넷 치면 네드베드에 대한 동영상은 많지만, 저는 그런것들을 통해 감히 네드베드를 평가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짧은 동영상으로 제나이와 비슷한 기간동안 축구를 했던 위대한 선수를 평가하기에는 너무 부족하다고 싶거든요. 아무튼 위대한 영웅 하나가 지네요. 아쉽습니다. 좀 더 유럽축구를 빨리 파고들걸.. 항상 한창 화려한 시기가 내려앉을 때 그때 관심을 갖는것 같아서..
자주들려주세요~~
네드베드는 이적하기 얼마전에 재계약까지 마쳤었기에 더 충격적이었던게 생각납니다. 게다가 처음에는 구단주는 승락했지만 네드베드가 유베의 제의를 거절했었다고 하죠.. 이런 구단의 처사에 실망한 네드베드가 한 라디오쇼에서 나 라치오 남고싶다며 울었다는 소리도 듣긴했는데 아직 확인은 못 했습니다..ㅎㅎ
근데 그랬던 네드베드를 내보내고 영입한게 멘디에타였다니.. 사실 멘디에타가 흔히 말하는 먹튀는 아니었는데 워낙 비쌌던 이적료와 해놓은게 너무 많았던 네드베드때문에 더 욕을 먹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해봅니다.ㅎㅎ
네드베드가 가기 싫다고 떠들고 다닌 건 맞긴한데.. 울기까지 했다니.. 허긴 능히 그럴 인사지요... 고감성 100%
멘디에타는 그 정도면 먹튀로 봐도 무관하지 않을까요? 명색이 에스빠냐 국대인데 저리 비참하게 살다간 인사가 또 누가있을까 싶네요^^
여전히 이블로그는 댓글도 정말 볼만 하군요 ㄷㄷㄷ
유베야 뭐... 하이젤 참사도 있지만 역시 승부조작때 워낙 실망이 커서....
(아무래도 전 드리블러보단 열심히 뛰댕기시고 시원하게 슛팅 뽑아주시는 선수를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근데 그런 네드베드가 이제 곧 은퇴하시는군요. 엏ㅁ허헣멍헣ㄴㅇ험ㅎㅠㅠ
이 선수야 말로 흔히 말하는 "무결점" 축구선수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나저나 체코 국대는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었더군요~
이번엔 진짜할지 의심스럽네요.....
델피에로가 어떤점에서 멍청하다는건지요
정말궁금하네요
데뷔때부터 별 이유도 없이 싫어했거든요... 넘 잘하니까 시기해서 그러는 거라, 그냥 그러려니 널리 헤아려주십시오.^^
이게 올드팬의 관록넘치는 글이로군요. 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