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만든 월드컵 예선전 5선.

가장 드라마틱했던 월드컵예선 5선을 모아봅니다. 대상은 80년대 중반 이후로 했으며(전부 하려다 귀찮아짐) 선정 기준은 언제나 그렇듯 제 맘입니다.


1. 1990. FW 신창원.  1989년 가을. 아프리카 A, B조 1위 알제리와 카메룬이 최종라운드에서 격돌합니다. 1차 알제리 홈경기는 0-0 무승부. 안 그래도 사이가 나쁜 양국인데다 5년 전 올림픽 예선에서 패싸움을 벌였던 과거가 있는 터라 경기장에는 살기가 넘쳐흐릅니다. 아니나 다를까 경기는 초반부터 다분히 고의적인 반칙들로 수놓아집니다. 결과는 호삼 하산의 결승골로 이집트의 승리.

경기 후 이집트 벤치에서 벌어진 축제로 묘한 긴장감이 감돌더니 이내 알제리 진영으로부터 깨진 병 하나가 날아와 이집트 팀닥터를 실명위기에 빠뜨려놓습니다. 이집트 선수들은 알제리 최고의 공격수 라하르 벨우미를 지목했고 용의자는 재빨리 잠적합니다. 인터폴의 수배령이 전세계에 떨어지니 이제 유벤투스로부터 제2의 플라티니라 지목받은 이 선수의 수명은 그대로 끝장이 난 셈이었습니다.

사실 인터폴이 전세계를 뒤지고 있을 때 벨우미는 20년 가까이 국내에서만 도피생활을 합니다 더 기가 막힌 건 당시 병을 던진 사람이 그가 아닌 골키퍼 카멜 카드리였음이 밝혀졌다는 거죠. 현역으로 복귀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흘러버렸습니다.

2. 1994. 도하의 기적 혹은 비극.  1993년 10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리는 월드컵 예선 마지막 경기소식을 접할 길이 없었던 저는 거의 10분 단위로 수신자부담 국제전화를 눌러댑니다. 교환원에게 지금 상황을 물어보고 끊어버리는 수법이었죠. 그날 괴전화를 끝까지 응대해주신 교환원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전합니다. 당시만해도 국제전화비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암튼 좌절모드에 빠졌던 저는 다음날 등굣길에 산 스포츠신문을 펼쳐들었다 사람 많은 전차 안에서 짐승처럼 포효합니다.

무시무시한 투자를 감행하며 아시아 강자로 입지를 굳혀가던 일본은 마지막 이라크전 승리면 첫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비겨도 한국이 북한을 2점차 이상으로 잡아야 하는 절대 유리한 상황이었죠. 일단 같은 시간 한국은 북한을 3점차로 이깁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2-1로 앞서던 일본이 20여초만 버티면 만고땡인 상황...

동점골의 주인공 자파르 옴란 살만은 이후 김흥국에의해 한국에 초청되어 응당 받아 마땅한 온갖 향응을 제공받습니다. 한편 저는 다음날 일본인들을 볼 때마다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는 염장질을 일삼았지요. 한일관계가 극도로 악화되어있던 시기였기에 더욱 즐거운 놀이였습니다. (홍차도둑님께서 직찍한 사진을 제공해주셨습니다. 클릭해서 등판을 자세히 보세요.)

3. 1994 초록은 똥색.  뭐 다들 아시겠지만 도하의 기적은 어느 정도 북한의 개입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였습니다. 제가 퍼주기 정책을 지지하는 이유 중 하나입지요. 허나 장소가 아일랜드였다면 상상도 못할 일일 터입니다. 1993년 11월. 북아일랜드는 수도 벨파스트에서 벌어질 홈경기에 앞서 이미 탈락을 확정해놓습니다. 반면 원정팀 아일랜드 경우 비기기만해도 본선행이 가능한 상황...

빌리 빙햄 북아일랜드 주장은 경기 전 상대팀 감독 잭 찰튼(보비 찰튼 형)에게 ‘당신들은 초록색이다!’란 의미심장한 말을 남깁니다. 너희와 우리는 엄연히 다르니 결전을 불사하겠다 이거죠. 아니나 다를까 북아일랜드 선수들은 이겨봐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경기에서 죽기 살기로 대항했고 후반 20분 경 지미 퀸의 골로 앞서가자 관중석 열기는 폭발직전까지 끓어오릅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10분 뒤 데니스 어윈의 어시스트를 교체 투입된 앨런 맥러플린이 캐논슛으로 연결하며 아일랜드의 미국행을 확정지어버립니다.

이날의 득점자 두 명은 훗날 비슷한 시기 양국의 국가대표 감독으로 활동하며 인연을 이어갑니다.

4. 1994 지놀라의 저주.  제 평생 가장 인상 깊었던 경기 중 하나이며 월드컵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탈락이었습니다. 울리에 프랑스호는 이스라엘, 불가리아와 남은 2번의 홈경기 중 승점 1점만 더하면 본선을 확정지을 수 있던 상태였습니다. 또한 공격력만 놓고 볼 때 당시 프랑스는 98년 우승팀보다 한수 위의 무장상태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본선 진출 가능성 99.99%...

1993년 10월 13일. 추가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이스라엘에게 역전패합니다. 이는 일 년 반의 예선리그 기간 동안 이스라엘이 거둔 유일한 승리이기도 했죠. 한 달 뒤 스토이치코프의 불가리아가 파리를 찾습니다. 당시 불가리아 역시 무조건 이겨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고 이미 홈에서 프랑스를 부순 전적이 있었지만 아무렴 프랑스가 탈락하겠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전반 중반 파팽이 뿌리고 칸토나가 거둬들인 골로 프랑스가 앞서나가자 상황은 종료된 듯 보입니다. 웬걸! 이제부터가 시작이었죠. 곧바로 코스타디노프의 만회골이 터집니다. 중량급 인파이터 복서 둘이 가드 내리고 무조건 휘두르기만 하는 대충돌이 펼쳐집니다.

시간은 어느덧 후반 45분. 프랑스가 좋은 자리에서 프리킥 찬스를 맞습니다. 이렇게 끝나는구나 싶었습니다. 어마나 근데 이게 뭔 일! 다비드 지놀라는 프랑스 역사상 최악의 실수를 저지릅니다. 그냥 돌려 시간을 끌라는 지시를 무시하고 크로스를 올린다는 게 상대편에 패스를 한 셈이 됩니다. 잽싸게 역습 들어간 페네프의 패스를 받은 코스타디노프가 알랭 로슈를 가볍게 지나 골대를 부술 듯 강타하고 안으로 빨려 들어간 결승 캐논 골을 성공시킵니다.

역적 지놀리는 심하게 다구리당합니다. 심지어 학교선생님 출신의 자상한 아버지상 울리에 감독까지 민족의 원수 운운하며 용서하지 않았죠. 이날 이후 지놀라는 다시는 프랑스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합니다. 대신 잉글랜드로 건너가 남은 선수생활을 보냅니다. 한편 이날의 영웅 코스타디노프도 이상하게 본선에서 만큼은 철저히 부진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팀이 4강까지 승승장구하는 동안 짐만 됩니다. 저주일까요?

5. 2006 워메 기죽어.  2005년 10월 8일. 같은 시간 코트디부아르가 수단을 두들기고 있다는 소식에 카메룬 선수들은 똥줄이 타들어갑니다. 이집트를 반드시 꺾어야 본선행을 성공할수 있는 상황에 스코어는 1-1. 다행히 하늘이 도와 추가시간 종료 직전 페널티킥을 얻습니다. 당시 인테르에 있었고 지금은 쾰른에서 뛰는 수비수 피에르 워메가 키커로 나섰으나...저땝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터진 에투의 폭탄발언은 엄청난 후폭풍을 만들어냅니다. 원래 자신이 차기로 되어있었는데 워메가 가로채 까불다가 이런 사태가 발생했다는 겁니다. 워메는 즉각 반박합니다. 자신이 엄연한 PK전담이며 변경에 대한 논의는 없었음은 물론 에투는 차라고 할까봐 눈도 안 마주쳤답니다.

어찌되었건 실축한 선수는 워메가 분명했고 이 경우 사람들은 에투의 말을 믿고 싶어합니다. 카메룬 경찰은 즉각 워메 가족에 대한 경호에 들어갔지요. 하지만 분노한 시민들의 행동이 공무원들보다 느릴 리가 없었습니다. 워메의 집과 자동차가 불탔고 착오로 엄한 이웃들의 자산이 피해를 입기도 합니다. 워메는 상엄한 경비 속에 유럽으로 출국합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아프리카 C조. 월드컵 본선 진출국은 코트디부아르였습니다.


번외: 1986년 월드컵을 위해 중무장한 네덜란드와 벨기에가 플레이오프에서 격돌한 사건은 드라마적 요소가 부족했고, 1989년 잉글랜드 테리 번쳐가 피칠갑 상태로 스웨덴전을 지휘한 경기는 선정적이란 이유로 아쉽게 탈락입니다.


by 바셋 | 2009/10/15 17:16 | 심심풀이 | 트랙백(1) | 덧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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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슈퍼로봇대전 연구소 at 2009/10/15 18:27

제목 : 흐리스토 보네프와 불가리아 축구
Hristo Bonev 흐리스토 보네프. 그는 불가리아의 전설적인 선수입니다. 별로 알려진 바가 없어서, 아는 사람도 거의 없고, 자료도 찾기가 어렵지만, 눈부신 선수들만 조명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소리 없이 빛났던 불가리아의 스타, 보네프 이야기를 준비해 보았습니다. 덤으로 불가리아 축구에 관한 재밌는 에피소드도 함께 준비했습니다. 프로필 이름 : Hristo Bonev (혹은 Christo Bonev) 생년월일 : 1947년 2월 3일 ......more

Commented by 아스테아 at 2009/10/15 17:56
아... 너무 재미있어서 회사에서 몰래 보다 웃어버렸...(...)
Commented by 바셋 at 2009/10/15 22:28
고맙습니다^^
Commented by 시북 at 2009/10/15 18:29
ㅋㅋㅋ 몰래몰래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아, 그리고 4번의 경우 저도 관련글을 쓴 적이 있어서 트랙백을 겁니다 :) 94년 프랑스의 탈락은 역사상 최악의 사건이었지요. 그건 정말로 저주와도 같았습니다. 0.1% 가능성도 실현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프랑스에게 경의를.... 불가리아 4강도 정말 드라마였고요.
Commented by 바셋 at 2009/10/15 22:31
대놓고 보세요. 우리가 남이가^^
불가리아를 일방적으로 응원했던 경기로 기억이 남네요. 사실 전 그때 프랑스를 그리 높이 사지 않았지요. 대신 청대를 주목하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즈음 98년 프랑스 우승을 예측한 저를 비웃더군요.. 제가 우승팀을 맞춘 유일한 메이저 대회입니다 ㅋ
Commented by 홍차도둑 at 2009/10/15 21:42
1994년 월드컵 탈락후 르몽드 였던가 기억이 안나는데 하여간 프랑스 언론사 중 한군데가 뽑은 제목이 대박이었죠...

"프랑스 1998 월드컵 본선진출 확정"

...대박 터트리는 유머였습니다...

그 뒤 다비드 지놀라는 로레알 모델에서도 쫒겨났던가...기억이 좀...-ㅅ-
(제가 스토리를 잡은 슈팅 코리아 라는 만화의 '바츠'는 다비드 지놀라가 모델이었슴...)
Commented by 바셋 at 2009/10/15 22:34
로레알 모델은 그 이후였습니다. 이피엘에서 인기몰이를 하자 영국시장을 겨냥한 건데... 생각해보면 오피려 그 실수 덕에 얻은 게 더 많은 건 아니었나 싶네요.
슈팅 코리아는 이머니 부족으로 앞에 좀 보다 말았습니다... 머니 쌓이면 컨티뉴^^
Commented by 화성거주민 at 2009/10/16 01:01
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Commented by Ceza at 2009/10/15 23:17
훗날 지놀라가 이런말을 했죠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는다. 날 좋아하는 사람은 할아버지밖에없다"

지놀라의 굴곡많은 선수생활을 그대로 보여주는 말이라고 봅니다
Commented by 바셋 at 2009/10/16 09:59
할아버지가 혹시 영국사람 아닐까요? ^^
Commented by 화성거주민 at 2009/10/16 01:05
그래도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던가요... 94년 그러한 개고생을 하면서 월드컵에 올랐기에 망정이지...... 어디선가 얼핏 본 기억에 따르면, 94년 미국 월드컵 지역 예선의 흐름이 난장판 스러웠다고 하더군요. 전 세계를 강타한 이변의 태풍속에서 한국은 불쌍한 오리새끼 마냥 간신히 살아남았다고.....

이때 아마 우리나라가 월드컵 진출 못했으면 김호 감독님은 전 국민에게 불구대천의 원수이자 을사오적급의 반역자(........)로 낙인 찍혔을 듯 합니다..;;; 덤으로 그 때 선수들은 역대 최악의 멤버라느니 하는 온갖 비난과 인격 살인이 일어났을 지도.
Commented by 바셋 at 2009/10/16 10:02
당시까지도 우리는 일본이 우릴 추월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함 떨어져 봤어야 정신 제대로 차렸을 것이란 생각을 해보곤해요^^
Commented by Glasscage at 2009/10/16 12:17
도하의 기적 때 초딩이었는데 다 포기하고 볼일보고 있다가 우리 형님의 함성에 닦지도 앉고

뛰쳐나왔던 기억이 나네요. 저 역시 아무리 FC 코리아가 케이리그를 죽이네 살리네 해도

못 나가는 것보다는 나가는게 훨씬 낫다고 봅니다.
Commented by 바셋 at 2009/10/16 14:17
줄기차게 본선에 진출하고, 이제는 이를 당연시 여길 수 있는 한국인들은 복받은 사람들이겠죠^^
Commented by 챈들러 빙 at 2009/10/17 03:44
수비는 못하지만 일단은 풀백인 워메의 굴욕. 으하하!!
Commented by 바셋 at 2009/10/17 12:24
얼마전엔 자살골도 하나 넣었더랬죠...ㅋ
Commented by 키팅 at 2009/11/18 13:43
제대로 축구를 감상하기 시작한 월드컵이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이었고,
그 이후 두 대회 연속 프랑스가 안 보여서, 프랑스는 축구 못 하는 줄 알았습니다...^^
1998년 프랑스가 우승하는 걸 보며 깜짝 놀랐었네요.

그리고 알제리와 이집트는 예전부터 사이가 안 좋았군요.
이번 예선에서도 이집트 관중이 알제리 선수들에게 돌을 던져 부상을 입힌 걸로 문제가 되고 있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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